떠다니는 물고기… 녹아내리는 눈사람… 오감을 깨워 경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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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레노, 리움서 첫 국내 개인전
보는 전시 아닌 공연과 같아
리움미술관 전관 사용 ‘파격’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 필립 파레노(위)의 작품이 설치돼 있는 모습. ‘내 방은 또 다른 어항’ 작품인 물고기 모양의 헬륨 풍선들이
“미술관은 갇힌 세계라고 느껴왔어요. 외부세계로부터 등을 돌리고 비싼 작품을 진열해 보여주죠. 막으로 둘러싸인 ‘버블’ 같은 공간인데 여기에 틈을 내고 싶었어요.” 미술관에 물고기가 쉼 없이 떠다닌다. 눈사람은 녹아내려 형체를 잃어버린다. 피아노가 혼자 연주하다 멈추길 반복하는가 하면, 미술관 곳곳이 소란스럽다.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끊임없이 움직이며 사운드를 귀로 듣고, 매 순간 바뀌는 전시장에 적응해야 한다. 고요한 가운데 벽에 걸린 작품과 시각으로 대화하는 게 당연한 미술관 전시 문법이 모조리 깨진다.
필립 파레노(60)의 작품이 설치된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의 풍경이다. 프랑스 출신으로 현대 미술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예술가란 수식어가 따라붙는 파레노의 전시는 ‘보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는 28일 리움에서 개막하는 개인전에 ‘보이스’(VOICES)란 제목이 붙은 이유다. 이를 두고 김성원 리움 부관장은 “보는 전시가 아니라 이 안에서 관람객이 경험해야 하는 공연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미술관의 틈을 내는 전시의 시작은 야외 대형 설치작 ‘막’(膜)에서 출발한다. 온도와 습도, 풍량, 대기오염 정도, 미세한 진동까지 바깥의 모든 요소를 수집해 미술관 내부로 보내는 인공지능(AI) 컨트롤타워다. 미술관 내부에선 이 데이터에 대응해 작품들이 시시각각 반응하는데, 파레노가 배우 배두나의 목소리를 기반으로 창조한 목소리 ‘델타 에이’(∂A)가 전시의 모든 요소를 조율한다. 외부 환경을 내부로 끌어들여 폐쇄된 미술관의 막을 찢는 것이다. 파레노는 “사물이라는 게 목소리를 갖는 순간 그 자체로 객체가 아닌 세계를 이루는 주체가 된다”면서 “내가 생각한 이 상상의 캐릭터가 막에서 전송된 데이터와 신호를 느껴 언어화하는데, 인간의 목소리를 부여하고 싶었다”고 했다.
지하 1층 전시장에서도 버블이 깨진 미술관의 틈새가 보인다. 공간 전체가 마치 세기말 분위기의 오렌지빛으로 연출돼 있는데, 여기선 공간과 시간의 예술이 펼쳐진다. ‘리얼리티 파크의 눈사람’은 시간이 흐르며 햇빛을 받아 점점 녹아내리는 지저분하고 못생긴 눈사람 조각이다. 녹아내리는 탓에 매일 다시 제작해야 하는 이 작품은 미술관의 영속성을 보란 듯이 깨는 쾌감을 준다.
‘내 방은 또 다른 어항’은 전시장을 둥둥 떠다니는 물고기 모양의 헬륨 풍선들이다. 벽에 걸리는 순간 움직임이 멈추는 미술작품과 달리 이 작품은 계속해서 부유하며 관람객을 쳐다본다. 관찰자인 관람객의 관점이 전복되는 순간이다. 이 밖에도 40여 점의 설치작품들은 저마다의 소리를 내며 다양한 해석을 안긴다.
리움은 파레노의 철학적 사유를 펼치기 위해 처음으로 미술관 전관을 사용하는 강수를 뒀다. 12년간 리움의 야외를 지켰던 아니쉬 카푸어의 ‘큰 나무와 눈’도 철거했다. 김 부관장은 “파레노는 미술에서 다뤄지지 않던 시간성에 주목한 작가”라며 “작가의 아시아 최초이자 최대 규모 전시이자 그의 예술세계를 망라하는 서베이 전시라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전시는 7월 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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