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명순 여사 빈소 찾은 YS 꼬마동지 "아저씨 옆에 가셔서 편해지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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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가택연금 당시 '밀서' 전달하며 각별한 우정
30년 전 성범죄 피해자 편지에 등록금·책값 지원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고인의 오랜 이웃이자 '꼬마동지'로 알려진 이규희씨가 조문을 하고 있다.2015.11.25/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서울=뉴스1) 이비슬 기자 = "아저씨 옆에 가셔서 이제 편해지셨을까요"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오랜 이웃이자 '꼬마동지'로 알려진 이규희 씨(54·여)가 9일 고(故) 손명순 여사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이 씨는 이날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한 빈소를 찾아 조문 후 "아저씨가 너무 오래 기다리셨다. 이제 두 분이 같이 계셔서 좋으시려나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씨는 서울 상도동 김 전 대통령 자택 바로 앞집에서 이웃으로 30년 넘게 지낸 인연이 있다. 김 전 대통령이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했을 당시 김 전 대통령 자택을 드나든 유일한 외부인이었다.
당시 10살이었던 그는 아들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외부와 단절된 김 전 대통령에게 편지와 서류를 몰래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평소에도 김 전 대통령 자택을 자주 오가던 이 씨는 의심의 눈초리를 피해 갈 수 있었다.
지난 2015년 김 전 대통령 빈소도 찾았던 이 씨는 이날 모친, 오빠와 함께 빈소를 방문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손 여사 빈소 조문 후 눈시울이 붉어진 이 씨는 "좋은 곳에서 영면하셨으면 좋겠다"며 "오래 고생하셨다"고 말했다.
이날 빈소에는 김영서 작가(50·여)도 방문해 고인을 추모했다.
친족 성범죄 피해자인 김 작가는 대학생이었던 지난 1994년 손 여사에게 편지를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김 작가는 "어린 마음에 힘센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하다가 손 여사에게 편지를 썼다"며 "청와대에서 (직원이) 오셔서 '편지 쓴 아이가 맞느냐'며 장학금도 주시고 대학교 장학금도 전달해 줬다"고 떠올렸다.
당시 사건 담당 검사에게도 진위를 확인하는 전화가 걸려 오자 검사가 어린 김 작가에게 "청와대에서 왜 전화가 오느냐"고 묻는 일도 있었다.
김 작가가 손 여사에게 편지를 보냈을 당시 청와대 행정관이었던 김상학 손명순 여사 비서실장은 이날 빈소에서 김 작가와 조우했다.
김 비서실장은 "이런 내용을 보고하면 어떻게 처리하라고 (손 여사께서) 말씀하신다"며 "영부인도 소임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셨다"고 전했다.
김 작가는 당시 받은 등록금으로 대학에서 교육학을 이수한 뒤 심리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2012년에는 성폭력 피해와 손 여사와의 인연을 담아낸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를 출간했다.
김 작가는 "제가 있던 쉼터에도 청와대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당시 등록금과 책값 덕분에 휴학하지 않을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했다"며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30년 전 성범죄 피해자 편지에 등록금·책값 지원도
(서울=뉴스1) 이비슬 기자 = "아저씨 옆에 가셔서 이제 편해지셨을까요"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오랜 이웃이자 '꼬마동지'로 알려진 이규희 씨(54·여)가 9일 고(故) 손명순 여사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이 씨는 이날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한 빈소를 찾아 조문 후 "아저씨가 너무 오래 기다리셨다. 이제 두 분이 같이 계셔서 좋으시려나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씨는 서울 상도동 김 전 대통령 자택 바로 앞집에서 이웃으로 30년 넘게 지낸 인연이 있다. 김 전 대통령이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했을 당시 김 전 대통령 자택을 드나든 유일한 외부인이었다.
당시 10살이었던 그는 아들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외부와 단절된 김 전 대통령에게 편지와 서류를 몰래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평소에도 김 전 대통령 자택을 자주 오가던 이 씨는 의심의 눈초리를 피해 갈 수 있었다.
지난 2015년 김 전 대통령 빈소도 찾았던 이 씨는 이날 모친, 오빠와 함께 빈소를 방문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손 여사 빈소 조문 후 눈시울이 붉어진 이 씨는 "좋은 곳에서 영면하셨으면 좋겠다"며 "오래 고생하셨다"고 말했다.
이날 빈소에는 김영서 작가(50·여)도 방문해 고인을 추모했다.
친족 성범죄 피해자인 김 작가는 대학생이었던 지난 1994년 손 여사에게 편지를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김 작가는 "어린 마음에 힘센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하다가 손 여사에게 편지를 썼다"며 "청와대에서 (직원이) 오셔서 '편지 쓴 아이가 맞느냐'며 장학금도 주시고 대학교 장학금도 전달해 줬다"고 떠올렸다.
당시 사건 담당 검사에게도 진위를 확인하는 전화가 걸려 오자 검사가 어린 김 작가에게 "청와대에서 왜 전화가 오느냐"고 묻는 일도 있었다.
김 작가가 손 여사에게 편지를 보냈을 당시 청와대 행정관이었던 김상학 손명순 여사 비서실장은 이날 빈소에서 김 작가와 조우했다.
김 비서실장은 "이런 내용을 보고하면 어떻게 처리하라고 (손 여사께서) 말씀하신다"며 "영부인도 소임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셨다"고 전했다.
김 작가는 당시 받은 등록금으로 대학에서 교육학을 이수한 뒤 심리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2012년에는 성폭력 피해와 손 여사와의 인연을 담아낸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를 출간했다.
김 작가는 "제가 있던 쉼터에도 청와대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당시 등록금과 책값 덕분에 휴학하지 않을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했다"며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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