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촌 한옥에 1호점… ‘얼죽아’의 나라에서 美食 커피로 도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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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추위에도 서울 서촌의 한 한옥 카페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닫이문이 열리자 향긋한 커피 냄새가 흘러나왔다. 이곳은 ‘미국 3대 커피’ 중 하나로 꼽히는 인텔리젠시아(Intelligentsia) 서촌점. 이날 문 연 인텔리젠시아의 첫 국내 매장일 뿐 아니라 글로벌 1호점이기도 하다.
유리 천장으로 덮은 한옥 안마당에서는 바리스타들이 드립 커피를 내리고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느라 분주했다. 본사 최고경영자(CEO) 제임스 매클로플린(McLaughlin) 대표는 안방·대청마루·사랑방을 좌식 테이블로 개조한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는 손님들을 꼼꼼히 관찰하고 있었다. 매클로플린 대표는 “서울처럼 커피 매장들이 하루 종일 손님으로 들어차 분주하게 돌아가는 도시는 세계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며 “인텔리젠시아가 서울에서 어떻게 자리 잡을지, 한국 커피 문화에 어떻게 기여하게 될지 기대된다”고 했다.
“한국은 세계적인 ‘얼죽아’의 나라”
-첫 해외 매장을 서울에 낸 까닭은.
“한국 커피 시장은 놀랍다. 한국인 연간 커피 소비량은 성인 1명당 367잔으로, 프랑스(551.4잔)에 이어 세계 2위다. 커피 수입량도 세계 3위다. 인텔리젠시아 같은 고품질 커피에 대한 수요가 충분하다고 보았다. 지난 10년간 우리 커피 원두를 수입·판매해 온 MH파트너스가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커피를 매장에서 제공할 자신감도 있었다.”
-이번 서촌점 오픈 전 서울에 와본 적 있나.
“여러 번 방문했다. 한국인들은 새로운 문화, 브랜드, 제품에 열려 있고 체험하려는 욕구가 매우 크다고 느꼈다.”
-서촌에 있는 한옥을 매장으로 선택한 이유는.
“서울은 강남·성수·압구정 등 지역마다 독특한 개성을 가졌다. 그중 서촌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공존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인텔리젠시아는 모든 매장이 서로 다르다. 인테리어를 매뉴얼화해 천편일률적인 매장을 선보이는 기존 브랜드들과 달리, 매장이 있는 동네 분위기에 어우러지도록 디자인한다. 서촌에서 한옥을 현대적으로 고쳐 카페로 활용한다면, 매장마다 지역 전통과 개성을 존중하는 우리 철학을 드러내기에 이상적이라고 판단했다.”
-한국만의 독특한 커피 문화는 뭔가.
“아메리카노 특히 아이스 아메리카노 판매 비율이 세계 어디보다 높다. 미국에서도 차가운 커피 음료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한국만큼은 아니다.”
한국은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나라’다. 지난해 메가커피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음료는 아메리카노였고, 이 중 82%가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스타벅스, 할리스 등 다른 커피 브랜드들도 비슷하다.
-서울 진출 전까지는 적극적으로 확장하지 않았다. 해외 매장도 없었고, 미국 내에도 12곳에 불과한데.
“매장을 찾는 손님들이 ‘인텔리젠시아는 다르네’라고 느끼길 바란다. 그것이 우리 커피의 지향점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최선의 방법이라 믿는다. 다른 커피 브랜드 매장들과도 그렇지만 인텔리젠시아 매장들 사이에서도 서로 차별화되는 경험이길 바란다. 이를 위해 독창적인 매장 설계와 인테리어가 필요한데, 그러려면 시간·돈·노력이 필요하다. 매장 수천 개를 열면 특별함을 유지하기가 더욱 어렵다. 우리가 확장을 자제해 온 이유다.”
-글로벌 1호점인 서촌점만을 위해 따로 준비한 메뉴가 있나.
“인텔리젠시아 매장에서는 철에 따라 커피 원두가 끊임없이 바뀐다. 좋은 식당이 제철 재료를 사용하듯, 인텔리젠시아는 그때그때 어느 지역의 어떤 원두가 제철이냐에 따라 사용하는 원두를 다르게 한다. 또 우리 매장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바리스타들이 근무한다. 인텔리젠시아는 바리스타들이 기존 커피 음료를 완벽하게 만들어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한편, 자신만의 메뉴를 개발할 시간과 자유를 충분히 주려고 노력한다. 서촌점 바리스타들도 다른 매장에 없는 서촌점만의 커피 음료를 창작할 것이다.”
커피 제3의 물결 일으키고 이끈 주역
커피는 이제 미식의 영역에 들어섰다. 미식가들이 좋아하는 요리사를 찾아 식당을 고르듯, 이름난 바리스타를 찾아 카페를 선택한다. 이러한 커피 문화를 업계에서는 ‘제3의 물결’이라 부른다. 20세기 초반 대량생산형 인스턴트 커피 문화가 제1의 물결, 1960~1990년대 미국에서 신선한 원두와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커피 문화에 기반한 브랜드와 프랜차이즈가 제2의 물결이라면, 커피 원두 생산자·품종·지역과 로스팅·추출 방식까지 따져서 골라 마시는 최근 트렌드를 세 번째 물결로 본다. ‘3세대 커피’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텔리젠시아는 커피 업계 제3의 물결을 일으켰다고 평가받는다. 업계에서 흔히 ‘스페셜티 커피’라 부르는 최상급 커피 원두를 확보하려 생산 농가와 직거래하며 시세가 아닌 품질에 따라 가격을 매기는 ‘다이렉트 트레이드(direct trade)’를 도입했다. 최고의 원두 맛을 즐길 수 있도록 강하게 볶아 진한 맛을 내는 ‘다크 로스팅’보다 가볍게 볶는 ‘라이트 로스팅’을 유행시켰다. 지금은 커피 업계 놈(norm·표준)으로 여겨지는 것들 중 상당수를 인텔리젠시아가 처음 시도했다.
-창업자 더그 젤(Zell)이 1995년 시카고에서 인텔리젠시아를 창업한 건 당시 시카고에 마실 만한 커피가 없어서였다고.
“미국 중부 위스콘신 출신인 젤은 대학 졸업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했다. 당시 미국 서부에는 피츠 커피(Peet’s Coffee), 스타벅스 등 제2의 물결을 주도한 커피 업체들이 있었다. 이 커피들을 맛본 젤은 고향에서 가까운 대도시 중 커피 불모지였던 시카고에서 신선한 고품질 커피를 팔면 승산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 예상은 적중했다.”
-인텔리젠시아라는 상호는 19세기 러시아 지식인들을 칭하던 말 ‘인텔리겐치아’에서 유래했다고 들었다.
“맞다. 역사적으로 카페는 커피를 매개로 지식인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나누는 공간이었다. 창업자는 인텔리젠시아도 그런 곳이 되기를 바랐다.”
-눈 달린 데미타스(에스프레소 잔)가 날개를 펼치고 붉은 별을 올려다보며 날아오르는 로고가 인상적이다.
“커피를 파인다이닝(고급 외식)에 버금가는 미각적 경험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열망을 담았다.”
-다른 커피 브랜드와 가장 큰 차이는 뭔가.
“소비자에게 완벽한 커피 경험을 전달하고자 한다. 원재료가 나쁘면 뛰어난 음식을 조리할 수 없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원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존 커피 가격은 품질과 관계없이 세계 2대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과 베트남의 작황에 따라 시장이 결정했다. 인텔리젠시아는 최고의 원두를 확보하기 위해 시세가 아닌 100% 품질에 따라 가격을 매긴다. 그리고 커피 생산 농가와 직거래한다. 필요에 따라 아무 곳에서나 원두를 구매하지 않고, 농가와 관계를 되도록 오래 유지한다. 모두 최고의 원두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라이트 로스팅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좋은 재료를 구했으면 과하게 양념하거나 조리할 필요가 없다. 최고 품질 원두가 가진 본연의 맛과 향이 최대한 가려지지 않도록 가볍게 볶는다. 와인처럼 커피도 테루아(terroir·산지)가 있다. 소비자들이 커피의 테루아를 느끼도록 하는 게 우리의 최종 목표다. 기존 미국 업체들처럼 원두를 짙은 갈색이 나도록 강하게 볶은 ‘다크 로스팅’을 하면 구수한 맛은 증가하지만 자칫 원두 본연의 맛과 향을 가릴 우려가 있다. 와인 고르고 마시듯, 매장을 찾은 손님들이 ‘콜롬비아 윌라(Huila) 지역에서 생산한 카투라(Catura)에서 생산된 원두를 드립 방식으로 내린 커피를 주세요’라고 주문하기를 바란다.”
-커피 업계가 제3의 물결을 넘어 제4·제5의 물결에 올라탔다는 말도 있다.
“뭐가 네 번째고 다섯 번째인지 잘 모르겠다(웃음). 다만 커피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RTD(Ready To Drink) 음료’가 성장세다. 도구나 재료를 갖추지 않고도 커피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제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완벽한 커피는 본연의 맛과 향 드러나야
커피 업계에 들어오기 전 매클로플린 대표는 시카고 대형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미국 경제지 포천 선정 세계 500대 기업에 포함된 대기업 여러 곳의 법률 자문을 맡았다. 인텔리젠시아 입사 전에는 브라질에서 커피 농장을 운영했다.
-변호사에서 커피 농장주로 변신한 계기가 있나.
“아내가 브라질 출신이다. 변호사 생활이 지겨워질 때쯤, 브라질 북동부에 있는 아내의 가족 소유 농장을 운영해 보기로 했다. 커피를 재배했지만 돼지도 키웠다. 커피는 일본 등 해외시장에서 꽤 인기를 얻었다. 커피 재배부터 가공, 수출까지 전 과정을 이해하게 됐다. 인텔리젠시아 경영에 큰 도움이 된다. 돼지는 생햄으로 만들었는데 그것도 커피만큼 인기 있었다(웃음).”
-출장 갈 때 커피 추출 도구를 챙겨 가나.
“커피 원두와 원두 갈 때 필요한 수동 그라인더, 필터를 챙겨 간다. 호텔 방에서 커피를 드립해서 마신다. 우리 회사 RTD 커피 음료를 가져갈 때도 있다. 드립하기 귀찮을 때 썩 훌륭한 대안이다(웃음).”
-완벽한 한 잔의 커피를 정의한다면.
“(아무것도 넣지 않은 커피 자체의) 단맛과 신맛의 균형이 좋고, 과일·꽃 향 등 본연의 풍미가 명료하게 드러나야 한다. 좋은 원두를 사용해 제대로 추출한 커피라면 그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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