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와는 다른 시인 박목월 미발표시 160편 발굴
컨텐츠 정보
- 310 조회
- 목록
본문
장남 박동규 교수 등 유작품발간위
80권 친필 노트에서 166편 선별
1936년부터 옹근 낯선 시풍과 시어
지난해부터 6개월에 걸쳐 시인 박목월의 미발표작 시를 발굴 분석한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 왼쪽부터 전소영 홍익대 초빙교수, 방민호 서울대 교수, 우정권 단국대 교수, 목월의 장남인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 유성호 한양대 교수, 박덕규 단국대 명예교수.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이번 시 공개를 보면 박목월 시인께선 뭐라고 하실까요?”(기자)
“뭐하러 했노?! 아버지가 그러실까 생각 들어 겁도 납니다.”(장남 박동규 교수)
“이번 공개된 노트엔 발표된 작품도 담겨있습니다. 아마 일찍 타계하셔서 못 했을 뿐 발표를 염두에 둔 작품도 많이 있었으리라 봅니다.”(박목월유작품발간위 방민호·유성호 교수)
국민시로 애송되는 ‘나그네’의 시인 박목월(1915~1978)이 남긴 친필 원고·노트에서 처음 발굴한 시 166편이 사후 45년도 더 지나 공개됐다. 시인의 의중 밖이다. 이 가운데 150여편은 박 시인의 아내가 보자기에 보관해오며 장남인 박동규(85) 서울대 명예교수(국문학)도 접근하지 않았던 자료로부터 나왔다.
가족사, 연애 일화로 보이는 사생활은 물론 전쟁 등 시대적 음지가 시상을 결정한 작품들이 대거 포함됐다. ‘청록파’ 시인의 덜 드러났던 자취로, 특히 작품적 경향부터 시어조차 기존에 알려졌던 목월과 거리를 둔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재평가와 추가 연구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는 목월이 공식 등단한 1939년부터 1978년 3월 타계(향년 63)하기까지 쓰인 것들이다. 친필 원고·노트 80권에 담긴 창작물로, 18권이 서재에 있던 덕에 타계 이후 동리목월문학관(경주)에 기증 보관되었을 뿐, 62권은 집 밖으로 나간 적도 없다. 시 작품 외 창작메모, 일기, 강의록 등이 수기된 전체 80권에서, ‘나그네’와 같이 이후 발표된 시 28편을 제외, 거듭된 수정의 흔적과 함께 완성 상태에 닿아 보이는 미발표작 시가 290편에 이른다.
지난해 8월부터 작업해온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는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완성도, 주제성, 첨삭 과정의 의미 등을 따져 166편을 별도 분류해 공개한다”며 “시인의 육필이라는 유품적 의미와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한 작가의 내면 의식 흐름과 시어를 수정 재배치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창작 교본의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목월은 노트에 초고를 전개시킨 뒤, 최종적으로 원고에 옮겨 시를 발표해왔다.
1939년 쓴 ‘募春(모춘)’의 초고. 발간위 제공
1936년, 1939년 자료를 중심으로 ‘募春(모춘)’ 등 동시에 가까운 시 20편가량이 우선 보태진다. ‘콩꼬투리’도 그중 한편이다. “하얀 구름/ 동동/ 여름도 안 갔는데// 그 콩꼬투리/ 맺었을까 하고/ 아기 산비둘기/ 엿보고 가고// 상기/ 콩밭에는/ 파란 콩꽃/ 피었는데// 그 콩꼬투리/ 맺었을까 하고/ 달밤에는 아기 꿩이 엿보고 가고”(전문) 시인은 동요시로 문단에 처음 이름을 알렸고 동시집만 2권을 냈을 만큼 당대 동시를 선도했다. 그밖에 1950년대 슬픔과 상실이 주된 정서를 이룬 시, 1960년대 가족과 일상적 삶이 소재가 된 시, 1970년대 6·25전쟁과 반전·반공, 근대의 그늘, 신앙이 배경이나 원류인 시들로 분류된다. ‘자연파’로 상징되는 시인의 목가주의 서정시와는 뚜렷하게 변별된다.
내밀해 보이는 시들도 함께 공개된다. 가령 ‘십이월 십일’ ‘제주항’ 등 연애 감정이 엿보이는 시들이다. 기존 시에선 낯선 시어들이 등장하는 계기로도 보인다. “주검을 느끼는 다방에서,// -서울에 가서/ 이것이, 내 슬픈 마음에 갈앉는 맨 첫째의 서글픈 꿈입니다./ -서울에 가서/ 이것이 내 슬픈 마음에 갈앉는 둘째의// R.// 바다에도 눈이 옵니다그려./ 바다에도/ 눈은/ 제 스스로 무릎이 소실되는 내 운명과/ 같이/ 그렇게 무너지는 눈자락에 눈발이/ 같이 한창이구료.”
목월이 1936년부터 시, 강의록, 일기, 편지 등을 수기한 노트. 발간위 제공
시인 박목월이 지훈에게 보낸 편지. 발간위 제공
박동규 교수는 이날 “아들로서 감히 아버지의 작품을 평가할 수 없다”며 “경주, 대구, 서울로 이사 다니고 다시 또 전쟁 중 피난하면서도 어머니가 시인의 아내로서 노트를 보존했다. 시인이 발표하기 싫어한 작품도 있을 텐데 시인 전반의 생애를 보는 데 이 자료가 필요해 보이고, 학자들에게 평가받아보자 생각으로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목월의 아내 유익순씨는 1997년 향년 78살로 작고했다.
박 교수는 아버지 목월을 두고 “시로 얽히지 않은 순간이 단 1분도 없던 시인”이라며 “시 관두고 쓰러지는 이들도 많지만 해방 전후, 암흑기에서 시작해 시를 안고 살아간 세대의 중심인물”이라고 기자회견 말미 소회를 밝혔다.
발간위에는 우정권 단국대 교수, 방민호 서울대 교수, 유성호 한양대 교수, 전소영 홍익대 초빙교수 등이 참여했다. 우 교수는 “목가적이지 않은 시들이 상당수 등장한다. 시대 상황과 먼 시인이 아닌 점을 볼 수 있고, 인간으로서의 내면적 성찰을 볼 수 있다. 문학적 가치가 굉장히 높아 문학사를 다시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발간위는 이번 시 공개와 더불어 향후 목월의 삶과 시에 대해 전자책, 전집, 평전 발간, 시낭송회, 뮤지컬화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80권 친필 노트에서 166편 선별
1936년부터 옹근 낯선 시풍과 시어
“이번 시 공개를 보면 박목월 시인께선 뭐라고 하실까요?”(기자)
“뭐하러 했노?! 아버지가 그러실까 생각 들어 겁도 납니다.”(장남 박동규 교수)
“이번 공개된 노트엔 발표된 작품도 담겨있습니다. 아마 일찍 타계하셔서 못 했을 뿐 발표를 염두에 둔 작품도 많이 있었으리라 봅니다.”(박목월유작품발간위 방민호·유성호 교수)
국민시로 애송되는 ‘나그네’의 시인 박목월(1915~1978)이 남긴 친필 원고·노트에서 처음 발굴한 시 166편이 사후 45년도 더 지나 공개됐다. 시인의 의중 밖이다. 이 가운데 150여편은 박 시인의 아내가 보자기에 보관해오며 장남인 박동규(85) 서울대 명예교수(국문학)도 접근하지 않았던 자료로부터 나왔다.
가족사, 연애 일화로 보이는 사생활은 물론 전쟁 등 시대적 음지가 시상을 결정한 작품들이 대거 포함됐다. ‘청록파’ 시인의 덜 드러났던 자취로, 특히 작품적 경향부터 시어조차 기존에 알려졌던 목월과 거리를 둔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재평가와 추가 연구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는 목월이 공식 등단한 1939년부터 1978년 3월 타계(향년 63)하기까지 쓰인 것들이다. 친필 원고·노트 80권에 담긴 창작물로, 18권이 서재에 있던 덕에 타계 이후 동리목월문학관(경주)에 기증 보관되었을 뿐, 62권은 집 밖으로 나간 적도 없다. 시 작품 외 창작메모, 일기, 강의록 등이 수기된 전체 80권에서, ‘나그네’와 같이 이후 발표된 시 28편을 제외, 거듭된 수정의 흔적과 함께 완성 상태에 닿아 보이는 미발표작 시가 290편에 이른다.
지난해 8월부터 작업해온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는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완성도, 주제성, 첨삭 과정의 의미 등을 따져 166편을 별도 분류해 공개한다”며 “시인의 육필이라는 유품적 의미와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한 작가의 내면 의식 흐름과 시어를 수정 재배치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창작 교본의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목월은 노트에 초고를 전개시킨 뒤, 최종적으로 원고에 옮겨 시를 발표해왔다.
1936년, 1939년 자료를 중심으로 ‘募春(모춘)’ 등 동시에 가까운 시 20편가량이 우선 보태진다. ‘콩꼬투리’도 그중 한편이다. “하얀 구름/ 동동/ 여름도 안 갔는데// 그 콩꼬투리/ 맺었을까 하고/ 아기 산비둘기/ 엿보고 가고// 상기/ 콩밭에는/ 파란 콩꽃/ 피었는데// 그 콩꼬투리/ 맺었을까 하고/ 달밤에는 아기 꿩이 엿보고 가고”(전문) 시인은 동요시로 문단에 처음 이름을 알렸고 동시집만 2권을 냈을 만큼 당대 동시를 선도했다. 그밖에 1950년대 슬픔과 상실이 주된 정서를 이룬 시, 1960년대 가족과 일상적 삶이 소재가 된 시, 1970년대 6·25전쟁과 반전·반공, 근대의 그늘, 신앙이 배경이나 원류인 시들로 분류된다. ‘자연파’로 상징되는 시인의 목가주의 서정시와는 뚜렷하게 변별된다.
내밀해 보이는 시들도 함께 공개된다. 가령 ‘십이월 십일’ ‘제주항’ 등 연애 감정이 엿보이는 시들이다. 기존 시에선 낯선 시어들이 등장하는 계기로도 보인다. “주검을 느끼는 다방에서,// -서울에 가서/ 이것이, 내 슬픈 마음에 갈앉는 맨 첫째의 서글픈 꿈입니다./ -서울에 가서/ 이것이 내 슬픈 마음에 갈앉는 둘째의// R.// 바다에도 눈이 옵니다그려./ 바다에도/ 눈은/ 제 스스로 무릎이 소실되는 내 운명과/ 같이/ 그렇게 무너지는 눈자락에 눈발이/ 같이 한창이구료.”
박동규 교수는 이날 “아들로서 감히 아버지의 작품을 평가할 수 없다”며 “경주, 대구, 서울로 이사 다니고 다시 또 전쟁 중 피난하면서도 어머니가 시인의 아내로서 노트를 보존했다. 시인이 발표하기 싫어한 작품도 있을 텐데 시인 전반의 생애를 보는 데 이 자료가 필요해 보이고, 학자들에게 평가받아보자 생각으로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목월의 아내 유익순씨는 1997년 향년 78살로 작고했다.
박 교수는 아버지 목월을 두고 “시로 얽히지 않은 순간이 단 1분도 없던 시인”이라며 “시 관두고 쓰러지는 이들도 많지만 해방 전후, 암흑기에서 시작해 시를 안고 살아간 세대의 중심인물”이라고 기자회견 말미 소회를 밝혔다.
발간위에는 우정권 단국대 교수, 방민호 서울대 교수, 유성호 한양대 교수, 전소영 홍익대 초빙교수 등이 참여했다. 우 교수는 “목가적이지 않은 시들이 상당수 등장한다. 시대 상황과 먼 시인이 아닌 점을 볼 수 있고, 인간으로서의 내면적 성찰을 볼 수 있다. 문학적 가치가 굉장히 높아 문학사를 다시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발간위는 이번 시 공개와 더불어 향후 목월의 삶과 시에 대해 전자책, 전집, 평전 발간, 시낭송회, 뮤지컬화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