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층 아파트 절반 덮었다” 대단한 선거 현수막…최대 크기 누구? [지구, 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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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서울 은평구 신사오거리. 시선을 사로잡는 홍인정 은평구갑 국회의원 후보의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키 낮은 건물 사이에 우뚝 솟아 가뜩이나 눈에 띄는 한 주상복합 아파트 옆면을 차지했다. 전체 15층 중 무려 7개 층을 뒤덮는 크기다.
이곳뿐 아니다. 선거철 주요 교차로나 지하철역 출구 인근이라면 어느 선거구에서나 쉽게 마주할 수 있는 광경이다.
서울 동작구 1호선 노량진역 양 옆으로 자리 잡은 두 동작구갑 국회의원 후보의 선거사무소도 각기 개성을 담은 현수막으로 세를 과시하고 있었다. 장진영 후보가 길쭉한 현수막으로 5층 상가의 절반을 점령했다면, 전병헌 후보는 넓적한 현수막을 걸고 신발끈을 묶는 모습을 연출했다.
유권자들에게 후보를 각인하려는 목적은 너끈히 달성하겠지만 커도 너무 크다. 현수막 게시대나 가로등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규격 10㎡ 이내의 선거 현수막과 비교하면 크기가 14~20배에 이른다.
이처럼 대형 현수막의 가로, 세로 길이를 멋대로 늘여도 문제가 없는 걸까? 당연히 법적으로는 문제 되지 않는다.
대형 현수막과 관련, 공직선거규칙 제27조는 “간판·현판 및 현수막은 선거사무소, 선거연락소 및 선거대책기구가 있는 건물이나 그 담장을 벗어난 장소에 설치·게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어떤 건물에 선거사무소가 위치하느냐에 따라 대형 현수막의 크기가 무한정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같은 해석을 내놨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규격 제한이 없다”며 “현수막을 다는 건물에 따라 큰 건물에는 크게, 작은 건물에는 작게 (게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 현수막의 크기 제한이 없다 보니 이번 국회의원선거에서는 ‘국내 최대 크기의 현수막’을 내세운 이색 후보도 등장했다. 목포시 국회의원에 출마한 이윤석 무소속 후보다. 목포에서 가장 높은 49층 짜리 건물에 가로 100m, 세로 10m의 대형 현수막을 설치했다. 선거 현수막보다 무려 100배 크다.
문제는 선거사무소 건물에 거는 대형 현수막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규격 제한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선거사무소 등의 현수막 규격은 공직선거관리규칙 제27조의 제1항에 담겨 있었으나 2005년 8월 삭제됐다.
법 개정 이전에는 대통령, 비례대표국회의원과 비례대표 시·도의원 및 시·도지사의 선거사무소의 현수막은 40㎡ 이내, 지역구 국회의원 및 시·군의 장 선거사무소와 선거연락소의 현수막은 20㎡ 이내로 제한됐다.
약 20년 전만 해도 선거사무소에 거는 대형 현수막의 크기는 선거 현수막 2배를 넘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크기 제한을 받지 않는 대형 현수막은 후보자의 선거사무소나 선거연락소 등 선거운동기구가 입주한 건물에만 걸 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신고된 전국의 후보자 선거운동기구는 871개소.
대형 현수막이 선거 현수막보다 평균 15배 크다고 가정하면 대형 현수막 871장은 선거 현수막 1만3065장 크기에 맞먹는다.
이는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선거 때 사용된 선거 현수막 1만3980장에 육박하는 규모이기도 하다. 선거사무소에 거는 대형 현수막만 모아도 선거를 한번 더 치를 수 있는 있는 셈이다.
공직선거법 상 현수막은 “천으로 제작하”라고 돼 있지만, 실상은 플라스틱이다. 대부분 합성섬유인 폴리에스테르로 돼 있어 썩지 않는 쓰레기다. 매각해도, 소각해도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소각하면 다이옥신과 같이 인체에 유해한 물질도 함께 나온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각 후보들의 대형 현수막으로만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약 8만2048kgCO2e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10㎡ 크기의 현수막 1장 당 온실가스가 6.28kgCO2e 배출된다는 기후변화행동연구소의 분석에 대입한 값이다. 30년 먹은 소나무 9000그루가 1년 동안 흡수해야 사라지는 양이다.
대형 현수막의 생명은 길지 않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871개 선거사무소가 설치된 일자는 평균 3월 6일. 딱 선거일 5주 전이다. 한달 남짓 사용하고 버리게 될 현수막으로 건물을 뒤덮는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할 지 결정하는 건 유권자들의 몫이다.
넘쳐 나는 현수막 쓰레기를 당장 줄이려면 후보들이 무한 현수막 경쟁에 몰리지 않도록 적어도 규격이라도 다시 제한해야 한다.
가장 좋은 건 선거사무소 등의 건물에 대형 현수막을 설치하지 않는 거다. 선거사무소에 현수막을 내걸지 않더라도 이미 선거구 곳곳에는 후보들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허승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은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가 있는데도 선거 홍보 수단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며 “온라인 광고나 문자 등의 새로운 방식이 생겼고, 현수막 없이 벽보나 명함, 공보물 등을 활용해도 충분히 선거 유세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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