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증원 멈추도록 소송지휘권 발동해 달라”… 의대 교수들, 대법원에 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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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이 2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의대 증원 취소를 촉구하며 연 '대법원 탄원서 접수 및 기자회견'에서 김현아 전의교협 언론홍보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의과대학 증원분을 반영해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을 변경·승인하자 의대 교수들이 대법원에 “정부가 증원 시행 계획과 입시 요강 발표를 보류하도록 소송지휘권을 발동해 달라”고 요청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24일 대교협의 의대 증원 확정 승인이 난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배장환 충북의대 교수는 “대교협 심의는 그냥 지나가는 절차일 뿐”이라며 “정부에서 압박하면 대교협은 (증원을) 통과시켜야 하는 입장에 놓여있고 지금까지 정부에 반하는 결정을 한 적이 없다. 거기에서 브레이크를 걸어준다든가 현명한 판단을 할 거라고 기대한 적은 없다”고 일갈했다.
오세옥 부산의대 교수도 “대교협이 개별 학교의 사정을 고려할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으며 지나가는 행정절차, 거수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고 비판했다.
교수들은 정부에 “지금이라도 의대 증원 결정·배정 과정의 명백한 위법성을 인정하고 2025학년도부터 연간 2000명씩 늘리는 정책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김현아 전의교협 부회장은 “입시생과 학부모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대입 시행계획 변경 일정은 법령상 사전 예고하게 돼 있는데 입시를 10개월도 남겨 놓지 않은 지난 2월에 갑자기 2000명 증원을 발표해 수많은 입시생과 학부모가 큰 혼란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전의교협은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재항고 건을 다루는 대법원에 “정부가 대법원 최종 결정 전까지 증원 시행 계획과 입시 요강 발표를 보류하도록 소송지휘권을 발동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날 발표한 ‘대법원장님, 대법관님들께 드리는 요청’에서 “교육부 장관이 이달 30일 입시 요강을 발표하겠다고 공언해 29일까지 대법원 결정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대법원은 최종 결정 시점을 밝히고 교육부에 발표를 보류하라고 소송지휘권을 발동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소송지휘권은 소송을 질서 있게 진행하고 심리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법원의 권한이다.
전의교협은 “5월31일까지 대학의 입시요강을 발표하는 것은 관행일 뿐 법령으로 정해진 게 아니”라며 “대법원의 소송지휘권 발동은 법적으로 충분히 가능하고 국민도 이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의교협은 이 같은 요청과 함께 대법원에 “현재 교육 여건으로는 과도하고 급작스러운 증원이 불가하고, 의대 증원과 배정 과정에는 명백한 절차적 위법성이 있었다. 2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공공복리 평가에서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고 주장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앞서 지난 16일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2심에서 기각·각하 판결을 내린 서울고법은 “이 사건 처분의 집행을 정지할 경우 의사 인력 확충을 통한 필수·지역의료 회복이라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전의교협은 “의대 증원 없이도 정부는 시급한 의료개혁을 문제 없이 시행할 수 있으며 다른 공공복리와 마찬가지로 사회에 대한 다층적인 이해 없이 의료개혁을 증원만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오히려 공공복리에 심대한 위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정원이 49명인 충북의대가 갑자기 200명을 교육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의대 증원과 배정 과정에서 정부는 법에 정해진 기본계획을 수립하지 않았고 대학의 자율성을 훼손했다”고 강조했다.
배장환 교수는 “대법원마저 기각할 시 많은 교수들이 죄책감과 절망감으로 자리를 이탈할 상황이 올 거라 본다”며 “교수들이 상황을 납득하거나 견디기 힘들다면 당직을 서다가도 달려 나갈 텐데, 늘어난 학생을 가르치려고 해도 교육할 인원이 없어질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역설했다.
전의교협은 정부에도 “의대 증원과 관련된 대학 학칙 개정이 졸속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대학의 자율적인 학칙 개정을 존중하라”고 촉구했다.
현재 의대 증원이 예정된 각 대학에서는 이에 맞춰 학칙 개정 단계를 밟고 있는데, 개정 과정에서 정부 압박으로 대학의 자율성이 침해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부산대 등에서는 민주적인 절차로 학칙 개정이 (처음에) 부결됐으나 재심의 과정에서 위협으로 인해 끝내 가결됐다”며 “국립의대는 교육부 예산과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교육부의 지시를 거스르기 어렵기에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받으며 의사결정을 번복하도록 강요받는 처지”라고 비판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의 ‘전공의 집단행동 교사’ 혐의와 관련해 전공의 2명이 참고인 조사를 받게 된 건에 대해서는 “전공의 사법처리 시 즉각 사직하겠다”며 “지금 미적거리는 많은 교수들이 모두 사직에 동참할 것이고 정부는 훨씬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규희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