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저 집 에어컨 달았대” 몰래 찍어 신고하는 伊 부촌 주민들, 무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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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유명인사들의 고급 휴양지로 알려진 이탈리아 북서부의 해안마을 포르토피노에서 에어컨을 둘러싼 주민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도시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당국이 에어컨 설치를 단속하자 주민들이 서로를 신고하고 나선 탓이다.
13일(현지시각)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최근 포르토피노 경찰은 주민들이 불법으로 설치한 에어컨을 단속중이다.
379명 인구가 살고 있는 포르토피노는 이탈리아에서 손꼽히는 부자 마을이지만 주민들은 돈이 있어도 에어컨을 쉽게 설치할 수 없다.
포르토피노는 1935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건물에 에어컨 설치가 전면 금지됐다.
이후 규제가 완화됐지만 여전히 설치 조건은 까다롭다.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실외기 등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설치해 도시의 미관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제약 조건이 따른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무더운 여름 날씨가 이어지자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무단으로 에어컨을 설치하는 집들이 늘었다.
단속에 나선 경찰은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옥상과 테라스에서 불법으로 설치된 실외기 22개를 찾아냈다. 또 기온이 급상승한 6월 이후로 15개를 더 적발했다.
일부 주민들은 에어컨 실외기를 숨기거나 주변과 비슷한 색깔의 페인트를 칠해 위장했지만, 이 역시 당국의 눈을 피하기 어려웠다. 주민들이 서로의 에어컨 설치를 감시하고 신고하는 일이 늘면서다.
이탈리아 현지 매체 코리에레델라 등에 따르면 이웃 주민의 초대를 받아 방문한 뒤 몰래 에어컨 사진을 찍어서 경찰에 넘긴 사례도 있다.
이곳 주민들은 실외기 소음이 싫어서, 또는 자신을 신고했을지도 모르는 이웃 주민에 대한 보복 등을 이유로 앞다퉈 경찰에 제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경찰이 옥상에 설치한 실외기를 찾기 위해 드론을 동원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지만 마테오 비아카바 시장은 이를 부인했다.
포르토피노에서 에어컨 불법 설치 혐의로 기소될 경우 최대 4만3000유로(약 64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 사건은 대부분 불기소됐으며 에어컨 단속의 목적이 벌금 부과가 아니라는 게 시 당국의 설명이다.
비아카바 시장은 “작년 겨울 누군가 비좁은 거리에 커다란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한 일을 계기로 단속을 시작하게 됐다”며 “사람들이 더위로 고통받고 수면을 방해받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규정을 존중하고 포르토피노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포르토피노는 바다와 항구 주위로 알록달록 지어진 집들이 조화를 이루는 해안 마을이다. 19세기부터 유럽 상류층의 휴양지로 알려진 이곳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빈, 팝스타 마돈나 등 유명 인사들이 자주 찾았다. 최근에는 이곳에서 패션 디자이너 돌체앤가바나가 주최한 파티와 인도의 억만장자 아난트 암바니의 결혼 전 파티 등이 성대하게 열렸다.
김자아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