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례]‘최악’ 김용원 피했으니 됐다? 안창호 청문회, 이대로 좋은가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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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가 청문회 날 자료를 내겠다는데, 이런 맹탕 청문회가 어디 있나? 청문회를 연기하거나 횟수를 추가해야 한다.”
3일 열리는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국회의 각종 자료 제출 요구에도 안 후보자는 버티기로 일관하는 모양새다. 인권위 내부에선 국회 대응이 너무 안이하다는 지적과 함께 ‘최악은 피했다’고 자위해야 하는 인권위의 현주소가 절망스럽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들에게 2020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를 편법 증여했다’는 의혹 등이 제기된 이후인 지난달 30일 안창호 인권위원장 후보자는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에 “추후 제출하겠다”는 답변서를 제출했다. 국회가 요구한 자료는 아파트 매매와 관련한 매매계약서, 매매대금 증빙자료, 공인중개사 수수료 입금 증빙자료, 장남의 아파트 매수자금 형성 경위, 강의 및 간증 목록, 2019~2024년 연도별 기타소득 등으로,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핵심 자료들이다. 안 후보자는 이들 자료 모두 청문회 당일 제출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더불어민주당 강유정 원내대변인은 1일 입장문을 내고 “청문회 당일에야 자료를 낸다는 건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무력화하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후보자는 버티기로 일관하지만 국회 역시 비판 외에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실 보좌관은 “(안창호 후보자가)자격이 없는 건 분명한데, 의원들 간에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그런 분위기는 안 느껴진다”고 말했다. 같은 당의 또 다른 의원실 비서관 역시 “(막말·혐오 발언으로 그동안 논란이 돼 온)김용원·이충상 등 최악은 피했다는 생각을 하는 데다, 최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과 김문수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 청문회를 보면서, 이 정도면 상대적으로 나은 게 아니냐고 보는 기류도 없지 않다”고 했다.
인권위에서 5년 이상 간부로 일한 ㄱ씨는 “청문회를 앞둔 야당이 안창호 후보자를 벼르는 것 같지만 ‘최악은 피했다’는 안도와 자조 속에 안창호 봐주기를 하는 느낌”이라며 “후보자가 당일에 자료를 낸다고 하는데 국회는 별 대응이 없다. 이럴 바에 청문회를 연기하거나 횟수를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인권위원장 후보들은 최선을 다해 국회에 청문회 자료를 제출했다고 지적하며 안창호 후보자처럼 ‘무작정 버틴다’는 태도를 보인 후보자는 거의 없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안 후보자의 ‘차별금지법 반대’ ‘사형제 폐지 반대’ ‘대체복무제 도입 반대’ ‘성소수자 혐오 발언’ 등은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인권위의 지향과 어긋날 뿐 아니라 반인권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안 후보자의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일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서’를 봐도 대체복무제 등에 대한 완고한 태도에 변화가 거의 없다.
안 후보자가 인권위 직원과 나눈 대화를 직·간접적으로 전해 들었다는 ㄱ씨는 “헌법재판관 출신이라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아까워서라도 함부로 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동안 저술과 강연, 간증을 통해 밝혀온 내용에 대한 확신이 강하고 그대로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안다”며 “인권위가 그동안 한 발 또는 반 발자국 정도 앞서서 했던 의견 표명과 정책 권고들을 해왔는데, 이제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 이 분이 가진 중대재해처벌법이나, 대체복무제, 차별금지법 등에 대한 입장으로 볼 때 인권위가 앞으로 국제규약에 따른 독립보고서도 하나도 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자가 지명되기 전 인권위를 파행으로 내몬 김용원 상임위원이 위원장직에 도전한 사실이 알려지며 인권위 내부에선 ‘최악만 피하면 된다’는 기류가 강했다. 안 후보자는 김 위원에 견주면 ‘신사적인 이미지’로 비친 것도 사실이다. ㄱ씨는 안 후보자가 ‘차선’이 아닌 ‘차악’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ㄱ씨는 “(안 후보자의 청문회 준비를 돕는 인권위 주요 보직자들이) 안창호 후보자를 어떻게든 잘 설득해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도록 도우면 되지 않겠느냐고 판단한 것 같지만, 인권위는 한순간에 망가질 수 있다”며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통해 끝까지 검증 노력을 포기하지 말기 바란다”고 했다.
고경태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