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심정지 여대생, 100m 앞 응급실 거부… 수술의사 없어서 ‘뺑뺑이’ 70대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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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주 조선대 여학생(20)이 5일 오전 교정 벤치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지만 직선거리로 100m 정도 떨어진 이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수용을 거부당했다. 학생은 인근 전남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됐고, 이후 호흡이 돌아왔지만 아직 의식 불명 상태다. 광주 동부소방서 등에 따르면 조선대병원 응급실 측은 “의료진 여력이 없어 수용할 수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2. 공사장에서 추락한 70대 남성이 수술할 의사가 없어 ‘응급실 뺑뺑이’ 끝에 사망했다. 부산소방재난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2일 오전 기장군의 한 공사 현장에서 작업 중 추락한 70대 남성이 인근 병원에서 거부당한 뒤 약 50㎞ 떨어진 고신대병원으로 옮겨졌다. 등뼈 골절로 폐가 손상될 수 있어 긴급 수술이 필요했지만,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알아보던 중 사고 4시간여 만에 사망했다. 고신대병원 측은 “우리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어서 권역외상센터 등을 찾던 중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전공의 이탈과 전문의 사직 등 의정 갈등 장기화에서 비롯된 ‘응급실 대란’이 전국적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서울신문이 이날 전국 응급실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리는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을 분석한 결과 서울의 응급실 중 ‘진료 제한 메시지’가 뜬 곳은 28곳으로 집계됐다.
시내 응급실 49곳 중 57.1%에서 진료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의미다. 진료 제한 메시지는 응급실에서 응급 처치를 한 뒤 후속 진료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서울 강남구 연세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는 피부과와 성형외과, 이비인후과 등에 전문의가 없어 입원 진료가 불가하다는 메시지 11건과 중증응급질환에 대한 진료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 5건이 떠 있었다. 16건 중 14건이 의사 등 의료 인력 부족 때문이었다. 성동구 한양대병원은 응급실 인력 부족으로 ‘중증외상환자 수용 불가’, ‘정형외과 수술 불가’ 등 11건의 메시지를 띄웠다. 노원구 인제대 상계백병원도 인력이 없어 정신과적 응급 입원이 불가능하고 ‘야간 외과환자는 반드시 (응급실의) 수용 능력 확인’ 등 10건의 진료 제한을 공지했다. 용산구 순천향대병원은 이날 오전 중환자실이 부족해 심장내과 입원이 필요한 환자는 수용이 불가하다고 밝혔다.
응급실 진료 제한 메시지는 의대 증원 사태로 전공의가 의료 현장을 떠난 이후 급증했다. 보건복지부가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의대 증원이 발표된 지난 2월 전국의 응급실 진료 제한 메시지는 9235건이었으나 지난 7월 1만 2311건까지 늘었다. 5개월 만에 33.3%가 증가한 것이다.
응급실 대란이 추석 연휴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정부는 이날부터 25일까지 3주 동안 ‘비상의료관리상환반’을 설치하고 응급의료기관별로 ‘전담책임관’을 지정해 1대1 관리를 하기로 했다.
정윤순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브리핑에서 “전국 409곳의 응급실 중 진료 차질 가능성이 있는 25곳은 복지부가 1대1 전담관을 지정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각적인 인력 지원 등 즉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전날부터 응급실 등 의료현장에 군의관 250명을 파견하기 시작했다. 이들 중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총 8명이다.
하지만 군의관 배치에 대해 현장에선 회의적이다. 이대목동병원의 경우 군의관 3명과 면담한 결과 응급실 근무가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복귀 조치를 통보했다. 이준철 한양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군의관들이) 응급환자 수술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중환자실에서 근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사소한 업무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진단이나 최종 치료까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은 전국 17개 광역시도 권역응급의료센터에 비서관들을 보내 현장 목소리를 청취한다고 밝혔다. 현장 의료진의 의견을 듣고 대책에 반영하겠다는 의도다. 정부의 수가 정책이나 필수의료 개혁 제도가 현장의 어려움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대통령실의 시각이다.
세종 곽소영·서울 한지은·곽진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