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 별명은 '청암산 강여시', 이게 무슨 뜻이냐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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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교사에서 산 지킴이로 대변신... 몸과 정신이 단단해질 일만 남았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청암산 강여시. 올해 생긴 내 별명이다. 후배가 던진 말에 나는 대답했었다.
"예쁘다고 예뻐했더니 나가도 너무 나갔어. 그게 선배한테 할 소리냐!"
그런데 후배가 그 별명으로 나를 부른 이유가 있다. 군산 청암산 지킴이 활동을 하게 되어 앞으로 자주 못 만나게 될 것 같다는 이야기 끝에 나온 말이었다.
늙지 않는 비법, 노인일자리
며칠 전, 모임에서 만난 친구가 늙지 않는 비법을 말한 것이 새 출발의 불을 당겼다.
"죽을 때까지 항상 현역이어야 해. 돈도 벌면서 자기 관리도 할 수 있는 현역!"
몇몇 친구들은 간호사 자격증으로 퇴직 후에도 요양 병원에서 계속 일하는 한 친구의 말을 자기 자랑으로 여기고는 입을 삐죽거렸다. 나 또한 교직이라는 현역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끝나고 나니 그 시절이 보석 같았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퇴직 후에는 여행을 많이 다녀야지, 음악 공연도 많이 보고, 책도 많이 읽기 등의 희망사항은 실행 가능한 꿈이 아니라 그냥 꿈이였다. 그런데 현실에서 꿈이 이루어지는 길이 열렸다. 어느날, 큰 길가에 붙어있는 현수막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2024년도 노인일자리사업 참여 신청'이 그것이었다.
그 홍보 현수막을 보고 군산시청 홈페이지 공고문을 꼼꼼하게 검색해 보았다. 나에게는 세 가지 형태의 일자리 중 사회서비스형이 조건에 맞았다. 모두 1만 1009명을 모집하는데 수행 기관 위탁사업의 인원이 1만 279명으로 군산시 자체사업보다 훨씬 많았다.
2004년부터 노인일자리사업이 시작됐다고 하니 벌써 20년이나 된 공익사업이다. 60세가 넘어 노인세대로 살면서도 아직까지 이 길로 들어서지 않을 만큼 노인과는 동떨어져 살았던 모양이다. 처음 이 사업의 시작은 단순 근로 활동이었다는데, 점차 사회의 요구에 맞춰 경험과 능력에 따른 보건 복지증진 활동으로 세분화된 것이 참으로 반가웠다. 올해 이 사업의 선정 결과 전체의 약 70% 정도만 일자리를 얻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내가 서 있는 것이다.
청암산(靑巖山)은 군산시 옥산면과 회현면 일대를 두르고 있는 산이다. 해발 117m로 구릉성 산지로 이어진 금성산과 함께 군산 저수지(또는 옥산 저수지)라고 불리는 제2 수원지를 품고 있다. 저수지 입구에서 청암산 정상까지는 약 2.5㎞정도이고, 왕버들 군락지와 대나무 숲으로 원시림의 모습이 보존되어 있는 작은 산이어서 등산객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
청암산 지킴이 활동을 신청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어느 날 남편과 사소한 말다툼으로 새벽까지 잠을 설쳐서인지 두통이 왔고, 두통이나 가라앉히려고 나선 곳이 바로 이곳 청암산이었다. 집에서 한 15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아주 멀진 않지만 평소에 다니던 시내를 벗어나 부담 없이 가기에는 쉽지 않은 곳이었다.
청암산 주차장 초입에는 초가을 이른 아침 물안개가 이불처럼 호수를 덮고 고요히 잠자고 있었다. 대나무 숲을 지나는데 풀잎 위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이슬방울들의 엉덩방아를 찧는 모습과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이 여간 귀엽지 않았다. 게다가 편백나무 피톤치드의 향내까지 온몸을 파고들면서, 조금 전까지 남편과의 기분 나빴던 감정이 어느새 시원한 물처럼 쑤욱 내려갔다.
마법처럼 소원이 이뤄진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이런 보물이 여기에 있다니, 건강 특효약이 걷기라는데 청암산에서 걸으면 아플 일도 없겠네. 매일 와야지'라고 마음먹은 것이 몇 달 전이었다. 그런데 일자리 결과 그 곳이라니, 마법처럼 척척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 신기했다. 시급은 2024년 최저 임금인 9860원.
물론 일하고 받는 돈도 소중하지만, 청암산 지킴이로서의 소명의식이 살아나 더 중요한 일을 하게 되었다는 마음에 여기 저기에 청암산 소문을 내고 다녔다. '청암산 강여시를 찾아주세요!'라고.
내가 맡은 일자리는 하루 평균 3시간씩 한 달 20일간 일하는 것이 기본이다. 청암산을 걸어 다니며 쓰레기를 줍는 일 외에도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하고, 특히 하체근육을 단단하게 해 줄 것이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미리 친 것은 아니었지만, 문화답사를 다니며 스토리텔러로서 자격증을 준비한 것과 사진 찍는 수업에 참여해 동호인 전시회를 한 것 등은 과거의 경험 위에 새 경험이 얹어지는 큰 즐거움이 될 것 같다.
겨울 방학이 되어 손자가 왔다. 몸무게 5kg 늘리는 목표 달성에 성공한 대가로 만 원을 주자 시큰둥하게 여기는 손자에게 나는 또박또박 말했다.
"할머니는 산에서 쓰레기 줍고 한 시간에 만 원 벌어. 만 원!"
물론 손자는 그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박노해 시인의 시 한 구절을 떠올렸다.
'자신의 자리에 한 번 뿌리 내린 나무는 아무리 작아도 시간이 희망이다.'
나무도 시간을 보내며 나이테가 생기듯, 나도 새로 생긴 나의 나이테가 조밀해지기를 기대해 보는 것은 욕심일까. 아닐 것이라 믿는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청암산 강여시. 올해 생긴 내 별명이다. 후배가 던진 말에 나는 대답했었다.
"예쁘다고 예뻐했더니 나가도 너무 나갔어. 그게 선배한테 할 소리냐!"
그런데 후배가 그 별명으로 나를 부른 이유가 있다. 군산 청암산 지킴이 활동을 하게 되어 앞으로 자주 못 만나게 될 것 같다는 이야기 끝에 나온 말이었다.
늙지 않는 비법, 노인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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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암산 호수의 데칼코마니 사진 청암산 호수 둘레길을 걷다 보면 만나는 하늘, 산, 나무 반영의 모습들 |
ⓒ 강진순 |
며칠 전, 모임에서 만난 친구가 늙지 않는 비법을 말한 것이 새 출발의 불을 당겼다.
"죽을 때까지 항상 현역이어야 해. 돈도 벌면서 자기 관리도 할 수 있는 현역!"
몇몇 친구들은 간호사 자격증으로 퇴직 후에도 요양 병원에서 계속 일하는 한 친구의 말을 자기 자랑으로 여기고는 입을 삐죽거렸다. 나 또한 교직이라는 현역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끝나고 나니 그 시절이 보석 같았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퇴직 후에는 여행을 많이 다녀야지, 음악 공연도 많이 보고, 책도 많이 읽기 등의 희망사항은 실행 가능한 꿈이 아니라 그냥 꿈이였다. 그런데 현실에서 꿈이 이루어지는 길이 열렸다. 어느날, 큰 길가에 붙어있는 현수막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2024년도 노인일자리사업 참여 신청'이 그것이었다.
그 홍보 현수막을 보고 군산시청 홈페이지 공고문을 꼼꼼하게 검색해 보았다. 나에게는 세 가지 형태의 일자리 중 사회서비스형이 조건에 맞았다. 모두 1만 1009명을 모집하는데 수행 기관 위탁사업의 인원이 1만 279명으로 군산시 자체사업보다 훨씬 많았다.
2004년부터 노인일자리사업이 시작됐다고 하니 벌써 20년이나 된 공익사업이다. 60세가 넘어 노인세대로 살면서도 아직까지 이 길로 들어서지 않을 만큼 노인과는 동떨어져 살았던 모양이다. 처음 이 사업의 시작은 단순 근로 활동이었다는데, 점차 사회의 요구에 맞춰 경험과 능력에 따른 보건 복지증진 활동으로 세분화된 것이 참으로 반가웠다. 올해 이 사업의 선정 결과 전체의 약 70% 정도만 일자리를 얻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내가 서 있는 것이다.
청암산(靑巖山)은 군산시 옥산면과 회현면 일대를 두르고 있는 산이다. 해발 117m로 구릉성 산지로 이어진 금성산과 함께 군산 저수지(또는 옥산 저수지)라고 불리는 제2 수원지를 품고 있다. 저수지 입구에서 청암산 정상까지는 약 2.5㎞정도이고, 왕버들 군락지와 대나무 숲으로 원시림의 모습이 보존되어 있는 작은 산이어서 등산객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
청암산 지킴이 활동을 신청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어느 날 남편과 사소한 말다툼으로 새벽까지 잠을 설쳐서인지 두통이 왔고, 두통이나 가라앉히려고 나선 곳이 바로 이곳 청암산이었다. 집에서 한 15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아주 멀진 않지만 평소에 다니던 시내를 벗어나 부담 없이 가기에는 쉽지 않은 곳이었다.
청암산 주차장 초입에는 초가을 이른 아침 물안개가 이불처럼 호수를 덮고 고요히 잠자고 있었다. 대나무 숲을 지나는데 풀잎 위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이슬방울들의 엉덩방아를 찧는 모습과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이 여간 귀엽지 않았다. 게다가 편백나무 피톤치드의 향내까지 온몸을 파고들면서, 조금 전까지 남편과의 기분 나빴던 감정이 어느새 시원한 물처럼 쑤욱 내려갔다.
마법처럼 소원이 이뤄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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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암산 대나무 그림자 청암산 대나무 군락지의 대나무 그림자의 사진 |
ⓒ 강진순 |
돌아오는 길에 '이런 보물이 여기에 있다니, 건강 특효약이 걷기라는데 청암산에서 걸으면 아플 일도 없겠네. 매일 와야지'라고 마음먹은 것이 몇 달 전이었다. 그런데 일자리 결과 그 곳이라니, 마법처럼 척척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 신기했다. 시급은 2024년 최저 임금인 9860원.
물론 일하고 받는 돈도 소중하지만, 청암산 지킴이로서의 소명의식이 살아나 더 중요한 일을 하게 되었다는 마음에 여기 저기에 청암산 소문을 내고 다녔다. '청암산 강여시를 찾아주세요!'라고.
내가 맡은 일자리는 하루 평균 3시간씩 한 달 20일간 일하는 것이 기본이다. 청암산을 걸어 다니며 쓰레기를 줍는 일 외에도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하고, 특히 하체근육을 단단하게 해 줄 것이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미리 친 것은 아니었지만, 문화답사를 다니며 스토리텔러로서 자격증을 준비한 것과 사진 찍는 수업에 참여해 동호인 전시회를 한 것 등은 과거의 경험 위에 새 경험이 얹어지는 큰 즐거움이 될 것 같다.
겨울 방학이 되어 손자가 왔다. 몸무게 5kg 늘리는 목표 달성에 성공한 대가로 만 원을 주자 시큰둥하게 여기는 손자에게 나는 또박또박 말했다.
"할머니는 산에서 쓰레기 줍고 한 시간에 만 원 벌어. 만 원!"
물론 손자는 그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박노해 시인의 시 한 구절을 떠올렸다.
'자신의 자리에 한 번 뿌리 내린 나무는 아무리 작아도 시간이 희망이다.'
나무도 시간을 보내며 나이테가 생기듯, 나도 새로 생긴 나의 나이테가 조밀해지기를 기대해 보는 것은 욕심일까. 아닐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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