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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美·유럽선 ‘배터리 여권제’… 2026년부터 공개 의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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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이 전기차 배터리 정보를 전면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은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이 극도로 높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전기차를 사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벌어지는 것을 넘어 기존 전기차를 구매한 사람들 사이에서 “전기차를 팔고 내연차나 하이브리드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11일 국내 1위 중고차 플랫폼 케이카에 따르면 지난 1일 이후 7일간 ‘내차 팔기 홈 서비스’에 등록된 전기차는 직전 주(지난달 25~31일) 대비 184% 증가했다. 현재 이 서비스에 등록된 전체 전기차 매물이 400여 대 규모라는 점에서, 수십 건 이상의 매물이 더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수 자동차 회사들에는 청라 화재 이후 고객들로부터 “내 차 배터리가 어디서 만든 것인지 알고 싶다”는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이를 감안해 자동차업계에서는 현대차처럼 배터리 정보를 전면 공개하는 것을 검토하는 곳이 늘고 있다. 정부는 내년에 아예 전면적으로 모든 자동차 회사의 배터리 정보 공개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배터리 정보 공개가 추진되고 있다. 상당수 수입차 업체들은 그러나 “배터리 등 자동차 부품을 어디에서 조달하는지가 일종의 영업 비밀”이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적잖은 난항이 예상된다.


◇'배터리 포비아’ 해결책 나올까


청라 화재 이후 전기차 불안이 본격적으로 확산한 것은 불이 시작된 전기차 EQE에 세계 10위권이자 소비자들에게는 낯선 중국 파라시스의 배터리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 발표 내용과 다르다는 점에서 ‘가짜 정보를 제공했다’는 논란까지 번졌다. 지난 2022년 벤츠 독일 본사의 전기차 개발 총괄 부사장은 현지에서 한국 기자들을 만나 “EQE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공급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에서 파라시스 배터리를 장착한 EQE가 3000대 이상 팔린 것으로 확인돼 ‘배터리 불안’을 더 부추기고 있다.


현재 현대차·기아, BMW, 볼보, 폴스타 등이 배터리 정보 공개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이지만 전기차 판매 상위권인 테슬라, 벤츠, 폴크스바겐 등 수입차는 아직 뚜렷한 방침을 밝히지 않고 있다.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배터리 등 자동차 부품의 공급처를 밝히지 않는 자동차업계의 오랜 관행이다.


자동차에는 수만 개 부품이 들어가고, 자동차 회사가 각 부품의 성능 등을 평가해 적재적소에 각 부품을 쓰기 때문에 브랜드가 부품을 보증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부품 제조사를 밝히고, 그 제조사 제품이 들어간 차량을 문제 삼을 경우 영업 활동에 지장이 불가피하다는 취지다.


또 한국 수입차 회사들은 사실상 현지 판매 법인이라 차량 제조와 관련된 이 부분을 직접 결정할 수 없어 입장을 내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 사례처럼 시장점유율이 낮은 배터리 회사의 제품이 들어간 차의 경우 소비자들이 차를 중고 시장에 팔거나 신차 구매를 꺼리게 될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공개는 글로벌 스탠더드


전기차 전환이 최근 수년간 빠르게 진행되면서 배터리와 관련된 제도 정비도 최근에서야 본격화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전기차로의 전환을 피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커진 가운데, 핵심 부품인 배터리 정보 공개가 뚜렷한 추세다. 소비자 알권리는 물론이고, 배터리 내부의 희귀 금속 등을 제대로 재활용하는 등 전기차 산업 차원에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기차 산업을 빠르게 키운 중국은 2018년부터 ‘배터리 이력 추적 플랫폼’을 구축해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도 2026년부터 ‘배터리 라벨링’ 제도를 통해 제조사와 구성 물질, 전압, 용량 등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2027년부터 ‘디지털 배터리 여권’ 제도 등을 차례로 도입해 배터리 정보를 공개·관리할 예정이다.


정부도 12일 전기차 화재와 관련, 환경부 주도로 국토부·산업통상자원부·소방청 등 관련 부처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는 회의를 연다. 국내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공개 의무화 여부, 배터리 정보 공개 여부에 따라 구매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는 것 등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하주차장 등의 전기차 주차 구역 스프링클러 등 소방 시설 대책 등도 함께 논의될 전망이다. 이를 종합해 다음 달 초 전기차 화재 종합 대책을 내놓는 게 목표다.


정한국 기자 [email protected]

이영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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