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전두환식 ‘사회 정화’ 떠올리게 한 파리 ‘노숙인 청소’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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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관광객으로 붐볐다. 성당은 수백년 전 지어졌지만 여전히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모습이었다. 드높게 서 있는 성당 주변 그늘에는 한 남성이 거리에 누워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은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지나갔고, 그는 관광객들의 시끄러운 수다에도 깨지 않고 잠을 잤다. 하나의 장면에 대조적인 두 존재가 있었다.
프랑스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현지 시민단체들이 수천 명의 노숙인이 '정화' 작업의 일부로 파리와 그 인근 지역에서 쫓겨나고 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당시 단체들은 파리 외곽 임시거처로 강제이송 조치가 당장 눈앞에서 노숙인을 치워버리는 일시적인 해법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는데, 실제 올림픽 이후 노숙인들은 다시 파리 시내로 돌아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주의 의사단체 세계의사회(Médecins du monde·메데셍뒤몽드)는 ‘2024 파리 올림픽’이 끝난 뒤 파리 외곽으로 강제이송됐던 노숙인들이 시내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고 30일 밝혔다. 까미유 노지에르(Camille Nozière) 대변인은 “(노숙인들이) 얼마나 돌아왔는지 정확히 파악되진 않지만 많이 돌아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또 “한 달 안에 올림픽 이전과 올림픽 기간에 벌어진 일, 그리고 이후 과제에 대해 담은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라며 “올림픽 때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부연했다.
노숙인들이 돌아오는 까닭으로는 임시 거처의 열악한 상황이 꼽힌다. 노지에르 대변인은 “당연히 지방의 임시 거처는 열악한 상황”이라며 “노숙인들은 좀 더 일자리가 많고 지인들이 있는 도시로 돌아오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이어 “거의 1년에 걸쳐 일드 프랑스(수도권)에 거주하는 노숙인 5000명 정도가 지방 노숙자 수용 시설(SAS Regionaux)로 보내졌고, 지방으로 가길 원치 않는 사람들은 파리와 일드 프랑스 지역 곳곳에 흩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파리 거리에 수년째 사는 약 3600명에게 거처를 제공하기 위한 계획을 정부에 요청해왔다면서 파리시는 긴급 거처 제공에 필요한 역할보다 이미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달고 시장은 “(노숙자 거주지 마련은) 파리시의 책임이 아닌데 압박을 받고 있어서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지에르 대변인은 “정부는 법적으로 모든 노숙인에게 그들이 원하는 잠자리를 제공할 의무가 있지만, 늘어나는 노숙인 수를 구호 시설이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매일 밤 우선순위에 따라 구호시설에 투숙할 사람을 골라야 하는 상황이 된 지 오래됐다”고 반박했다. 또 “정부가 그들의 의무를 행하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내년 예산을 보면 시설에 대한 예산 전혀 증액된 바 없다”고 지적했다.
세계의사회는 의사들로 구성된 구호단체다. 이들은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도심의 노숙인들의 건강을 살피는 일을 해왔다. 노지에르 대변인은 “올림픽으로 그들 상당수가 사라지게 된 건, 우리에게도 큰 사건이었다”며 “당연히 노숙인들이 맞닥뜨린 이 부당한 현실을 세상에 알릴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파리 올림픽 개최 관련 사회적 영향에 대한 경고 활동을 하는 약 90개 단체 연합인 ‘메달의 뒷면’(Le Revers de la Medaille)은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지난해 4월부터 약 13개월 동안 올림픽을 이유로 망명 신청자, 어린이 등을 포함한 노숙인 1만2500여명이 파리에서 쫓겨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당국이 올림픽 기간 파리를 돋보이게 하려고 취약층을 상대로 ‘사회적 청소’를 벌이고 있다며 이들을 버스에 태워 임시 거처로 보내는 것은 ‘거적으로 비참함을 가리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파리=글·사진 윤준호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