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차 소신 셀럽' 정우성 "연예인도 사회인...꾸민 얘기만 하고 살 순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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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TV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에서 청각장애 화가 차진우를 연기한 배우 정우성. 스튜디오 지니, 스튜디오 앤뉴 제공
배우 정우성(51)은 13년 전 일본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각본 기타카와 에리코·제작 TBS 텔레비전)의 원작 판권을 샀다. 청각장애 화가와 배우 지망생의 사랑을 다룬 이 작품은 1995년 일본 방영 당시 28%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정우성은 드라마 중간에 내레이션으로 깔린, 말을 하지 못하는 남자 주인공의 목소리가 “심장에 와서 박혔다”고 했다. 이내 드라마 제작을 결심했다. "(청각장애인인) 주인공에게도 내면의 소리가 있는데,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간과했다"는 것을 깨닫고서다.
"막차 타는 기분"으로 11년 만에 멜로
주변에선 반대했다. “남자 주인공이 끝까지 목소리 없이 연기하는 드라마가 흥행이 되겠냐”,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설정을 바꾸면 어떠냐”는 반응을 보면서 ‘아직은 힘들겠다’ 싶어 제작을 접었다. 그러다 몇 년 전 다시 판권을 구매해 제작에 나섰고, 16부 내내 대사 한마디 없는 화가 차진우를 연기했다.
정우성이 직면한 어려움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처음 해보는 수어 연기, 또 하나는 첫 판권 구매 당시 30대였던 그가 이제 50대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었다. 1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내 물리적 나이와 차진우의 나이를 맞추면서 원작과는 다른 결의 드라마로 완성됐다”며 “장르는 멜로지만 이성에 대한 사랑보다는 인간으로서의 관계를 더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드라마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 이후 11년 만에 멜로에 복귀한 그는 “‘더 늦으면 출연을 포기해야 한다’는 막차 타는 기분으로 했다”며 웃었다. 지니TV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16일 종영했다.
"연예계에서 여자친구 처음 공개"
정우성은 지난해 11월 가수 성시경의 유튜브 채널에 나와 "연예계에서 여자친구가 있다고 커밍아웃한 배우는 제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유튜브 캡처
데뷔 31년 차 배우인 정우성은 소신 발언으로도 재조명받고 있다. 지난달 가수 성시경의 유튜브 채널에 나온 그는 관객들에겐 영화 많이 봐달라고 하면서 정작 영화인들은 영화관을 찾지 않는 건 “염치없다”고 꼬집었다. 또 연예인들이 연인의 존재를 감추는 관행에는 “똑같은 인간인데 왜 유명세 때문에 누군가(연인)가 있으면 안 되냐”고 말하기도 했다. 신중하되 솔직한 그의 답변은 많은 지지를 받았고 ‘우리 시대 몇 안 되는 셀러브리티’라는 평가도 나왔다.
수려한 외모에 가려졌을 뿐, 정우성은 늘 자기 목소리를 냈다. 1994년 영화 ‘구미호’로 데뷔한 그는 이듬해 해외 촬영 중 제일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여자친구”라고 대답했다. 연예인은 ‘만인의 연인’이라는 공식이 확고하던 시절인 데다 신인 배우였지만 관행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인 정우성이 2019년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난민 캠프의 배움터를 찾아 로힝야 난민 어린이들을 만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 제공
사회 이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인 그는 예멘 난민들의 제주 입국으로 난민혐오가 최고조에 달했던 2018년 “난민을 잠재적 범죄자가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 봐달라”고 호소했다. 이후 오래 악플에 시달렸지만 난민 관련 책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2019년)을 출간하는 등 우직하게 활동했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그날, 바다’(2018년) 내레이션도 맡았다. 제작팀은 당초 섭외가 안 될 거라고 예상했지만 정우성은 제안을 듣자마자 바로 승낙했고, 녹음도 스스로 세 번이나 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이미지 타격을 우려해 사회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것과는 상반된 행보다.
부담을 느끼진 않을까. “저한테는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다 사회인이잖아요. 연예인이기 때문에 사회와 분리돼서 꾸며진 이야기만 하고 살 수는 없잖아요.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 각자의 입장에서 얘기할 수 있고, 그걸 인정하면 된다고 봐요. 저를 안 좋게 보는 분들이 (안 좋게) 언급하는 것도 인정해요. 다양한 얘기가 공존하는 게 사회니까요.”
남보라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