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고교생 ‘경찰관 살인’…총기 난사로 경관 2명 희생[그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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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채나연 기자] 1999년 2월 23일 오후 10시 20분께 경북 구미시 한 주택에서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 A군이 평소에 알고 지낸 18세 B양을 납치했다. 이틀간 납치극을 벌인 A군은 경찰관 두 명을 총기로 살해하고 B양에게 중상을 입힌 뒤 검거됐다.
사건 발생 4개월 전인 1998년 11월 구미 S고 3학년 A(19)군은 우연히 알게 된 대입 검정고시 준비생 B(18)양에게 첫눈에 반해 한 달가량 적극적인 구애를 펼쳤으나 B양은 이를 거절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A군은 1999년 2월 23일 아버지 소유의 쏘나타를 끌고 나와 친구 C군과 함께 밤 10시쯤 구미시 지산동 B양의 집으로 찾아가 가족을 흉기로 위협해 B양을 납치했다.
B양 부모의 신고를 받은 구미경찰서는 A군의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했고, 납치 이틀째인 2월 25일 오후 2시 30분께 상주시 복룡동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와 휴대전화를 하고 있던 A군의 공범 C군을 검거했다.
검거 당시 C군은 “A군이 B양을 데리고 구미로 내려갔다”고 말해 경찰은 곧바로 구미로 출동했으나 구미로 가던 경찰은 C군의 진술에 의심을 품어 추궁 끝에 A군과 B양이 좀 전까지 C군과 같은 식당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이에 경찰은 식당에서 불과 200m 떨어진 상주시 복룡동 정미소에 숨어 있는 A군을 검거하기 위해 상주경찰서에 지원을 요청했다.
연락을 받고 출동한 상주경찰서 동문파출소 소속 김인배 경장(34)과 김성균 순경(30)은 A군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정미소 앞에서 수배 중인 차량을 발견해 현장에서 A군을 검문했다.
이들이 A군에게 수갑을 채우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졌고 김경장의 권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A군은 순간 권총을 집어들어 옆에 있던 김순경의 얼굴에 실탄 1발을 발사, 오른쪽 눈 위에 관통상을 입은 김순경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이어 A군은 김경장에게도 실탄 3발을 발사한 후 B양을 데리고 나와 차량을 타고 도주하려 했지만, 키가 없어 정미소로 다시 돌아왔다. 당시 부상을 당한 김경장이 무전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발견한 A군은 이미 사망했던 김순경이 가지고 있던 총을 뽑아 김경장에게 실탄 2발을 발사했다.
A군은 도망가는 B양에게도 총을 발사했으나 총알이 빗나갔다. 이후 B양을 인질로 붙잡아 경찰 60명가량과 대치하던 중 이날 오후 6시 50분경 경찰이 강제 진압을 시작하자 A군은 자해 소동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A군이 권총으로 B양의 후두부를 가격하고 흉기로 찌르는 등 피해가 커지자 경찰은 A군에게 실탄 2발을 쏴 제압했다. A군은 인질극을 벌인지 1시간 만에 검거됐다.
B양은 중상을 입어 곧바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충격으로 후두부에 내출혈이 발생해 실명 위기를 맞았다.
앞서 부상당한 김경장은 상주 성모병원으로 옮겨져 5시간 30여 분 동안 수술을 받았으나 가슴과 폐에 입은 상처가 너무 커 결국 26일 오전 4시 20분께 사망했다. 현장에서 먼저 사망한 김순경은 당시 2개월 전 결혼한 새신랑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경북지방경찰청은 숨진 김경장과 김순경을 상주경찰서 순직처리하고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
경찰 조사 결과 A군은 고교 1학년 때인 97년 11월 폭력사건을 일으켜 대구지검 김천지청에서 소년보호 사건으로 분류 처리됐으며 2학년 때인 98년 7월에도 비슷한 사건으로 김천지청에서 선도유예 처분을 받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재판부는 A군에게 무기징역, 공범 C군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하여 A군은 현재까지도 수감 중이다. 범행에 도모했던 C군은 2002년 8월 만기 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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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앙심을 품은 A군은 1999년 2월 23일 아버지 소유의 쏘나타를 끌고 나와 친구 C군과 함께 밤 10시쯤 구미시 지산동 B양의 집으로 찾아가 가족을 흉기로 위협해 B양을 납치했다.
B양 부모의 신고를 받은 구미경찰서는 A군의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했고, 납치 이틀째인 2월 25일 오후 2시 30분께 상주시 복룡동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와 휴대전화를 하고 있던 A군의 공범 C군을 검거했다.
검거 당시 C군은 “A군이 B양을 데리고 구미로 내려갔다”고 말해 경찰은 곧바로 구미로 출동했으나 구미로 가던 경찰은 C군의 진술에 의심을 품어 추궁 끝에 A군과 B양이 좀 전까지 C군과 같은 식당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이에 경찰은 식당에서 불과 200m 떨어진 상주시 복룡동 정미소에 숨어 있는 A군을 검거하기 위해 상주경찰서에 지원을 요청했다.
연락을 받고 출동한 상주경찰서 동문파출소 소속 김인배 경장(34)과 김성균 순경(30)은 A군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정미소 앞에서 수배 중인 차량을 발견해 현장에서 A군을 검문했다.
이들이 A군에게 수갑을 채우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졌고 김경장의 권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A군은 순간 권총을 집어들어 옆에 있던 김순경의 얼굴에 실탄 1발을 발사, 오른쪽 눈 위에 관통상을 입은 김순경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이어 A군은 김경장에게도 실탄 3발을 발사한 후 B양을 데리고 나와 차량을 타고 도주하려 했지만, 키가 없어 정미소로 다시 돌아왔다. 당시 부상을 당한 김경장이 무전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발견한 A군은 이미 사망했던 김순경이 가지고 있던 총을 뽑아 김경장에게 실탄 2발을 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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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양은 중상을 입어 곧바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충격으로 후두부에 내출혈이 발생해 실명 위기를 맞았다.
앞서 부상당한 김경장은 상주 성모병원으로 옮겨져 5시간 30여 분 동안 수술을 받았으나 가슴과 폐에 입은 상처가 너무 커 결국 26일 오전 4시 20분께 사망했다. 현장에서 먼저 사망한 김순경은 당시 2개월 전 결혼한 새신랑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경북지방경찰청은 숨진 김경장과 김순경을 상주경찰서 순직처리하고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
경찰 조사 결과 A군은 고교 1학년 때인 97년 11월 폭력사건을 일으켜 대구지검 김천지청에서 소년보호 사건으로 분류 처리됐으며 2학년 때인 98년 7월에도 비슷한 사건으로 김천지청에서 선도유예 처분을 받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재판부는 A군에게 무기징역, 공범 C군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하여 A군은 현재까지도 수감 중이다. 범행에 도모했던 C군은 2002년 8월 만기 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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