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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사람냄새' 가득한 160번 버스 첫 차…AI기사가 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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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올 하반기 160번 버스 첫 차에 '자율주행 새벽동행버스' 도입
새벽시간 '160번 버스' 첫 차 동행해보니
미화원·경비원 등 노동자들 가득 찬 버스
승객들도, 기사들도 입 모아 "안전 걱정, 사고 걱정"
"내 일자리도 대체될까 두렵다"는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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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새벽 160번 버스. 김수진 수습기자
모두들 잠든 새벽 3시. 누군가는 하루를 시작한다. 지난 25일 새벽, 서울 도봉구 버스 차고지는 첫 차 운행을 준비하는 버스기사들로 북적였다. 160번 버스 기사 주장호(58)씨는 체감온도 영하 12도의 날씨에 혹시라도 승객들이 추울까 미리 히터를 켜놓았다. '내 버스' 바닥에는 먼지 한 톨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빗질에 여념이 없다.
 
버스 첫 차 운행은 주씨의 자부심이다. 곧 'AI 기사'가 온다지만, '사람 기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은 많기 때문이다. 주씨는 "자율주행버스가 도입되면 승객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조치를 취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주씨는 "한 번은 승객이 의자에서 고꾸라져 바닥에 철푸덕 쓰러져서 봤더니 뇌전증 환자였다"면서 "버스를 안전한 곳에 세운 뒤, 119를 불러서 바로 조치를 취했다"고 전했다.
 
운전 경력 25년 동안 사고 한 번 없었다며 '무사고 경력증'을 자랑스레 보여주던 주씨는 이제 승객들을 맞이하러 나섰다. 사이드미러에 비친 주씨의 표정은 다소 비장하기까지 했다. 그 표정에선 책임감이, 다소 무거운 노동자의 책임감이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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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새벽 시간대 160번 버스의 첫 차 풍경. 김수진 수습기자
"삐빅-----어서오세요."
 
새벽 3시 57분, 160번 버스는 손님을 싣기 시작했다. 승객 최애정(60)씨가 올라탔다. 핫핑크 상의를 입고 곱게 셋팅한 머리에 빨간 루즈까지 바른 최씨다. 최씨는 서울 종로구에서 청소 일을 하는 미화원이다.
 
최씨는 "사무실 직원분이 일을 잘한다고 보너스를 줄 때 너무 고맙다"면서 "내가 한 만큼 회사에서도 (인정)해준다. 그래서 난 너무 좋다"며 자신의 노동에 대한 자부심을 뽐냈다. 최씨는 돈을 벌어서 사랑스러운 손녀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는 일이 낙이라고 했다.
 
160번 버스는 최씨처럼 청소부나 경비원 등 새벽 시간부터 일을 시작하는 노동자들이 많이 이용한다. 도봉산역에서 종로와 마포역, 여의도역, 영등포역 구간을 운행하는데, 매번 같은 시각 같은 곳에서 버스를 타다 보니 승객들은 이내 친구가 되기도 한다.
 
광화문에서 청소 일을 하는 임모(72)씨와 이순남(61)씨가 그런 경우다. 2년 동안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버스를 타고 같은 곳에서 내리는 탓에 이들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임씨와 이씨는 버스에 나란히 앉아 각자 전날 있었던 이야기 보따리를 푼다. 이씨는 "이야기를 하다 졸리면 잠깐 눈을 붙이고, 서로를 깨워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임씨와 이씨는 다른 승객들에게 방해가 될세라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눈다. 한 중년 여성도 이들의 친구인 듯, "언니, 언제부터 있었어? 나 언니 못 봤네"하며 반갑게 이들에게 말을 건넨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이 버스도, 올해 하반기부터는 큰 변화를 맞이한다. 지난 22일, 서울시는 올 하반기부터 160번 버스 첫 차를 '자율주행버스'로 운행하겠다고 밝혔다.
 
160번 버스 노선에는 새벽에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아 새벽 첫 차부터 승객이 잔뜩 몰린다. 하지만 새벽부터 운전할 '사람' 기사를 구하기 힘드니,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율주행버스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승객들은 걱정이 크다. '사람 기사' 없는 주행은 무언가 불안하다. 또 AI 기사가 사람 기사를 대체하는 시대를 곧 눈앞에 지켜보게 됐으니, 육체노동을 하는 자신의 일자리까지도 대체될까 두렵다.

"기사님이 가방도 들어주고 그런 경우가 의외로 많아요. 인사도 해주시고. 그러면 하루가 기분이 좋잖아요" 시설 안내 업무를 하는 승객 박승연(60)씨는 아직은 사람 기사가 좋다.
 
박씨는 "자율주행버스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거나 그럴 수 있지 않냐"면서 "사고가 안 난다는 보장이 없어서 걱정이 되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자리를 뺏길까 두렵다"면서 "기계가 사람을 지배하게 되는 것 아니냐. 말 그대로 이제 허수아비가 되는 거다. 발전 되는 것도 좋지만 사람들은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 임모(72)씨도 "아무래도 눈으로 기사님을 직접 봐야 한다. 운전 경력도 오랜 기사님이 운전을 하는 게 안심이 된다"면서 자율주행버스를 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또 임씨는 "인구는 점점 줄어드는데 AI가 다하면 사람들은 무엇을 할 수 있냐"면서 "걱정된다"고 말했다.
 
승객 김종건(55)씨도 "중간에 교통 사고가 났을 때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바로 조치가 어렵지 않을까, 마냥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걱정했다.
 
버스 기사들도 자율주행버스의 도입에 회의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단순히 '밥그릇' 문제를 넘어, 승객의 안전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160번 버스 기사 주장호(58)씨는 버스기사들의 '운전 꿀팁'으로 "거울을 자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동이 불편한 승객이나 노약자 등이 버스에 타면 제대로 자리를 잡았는지, 차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지 계속 살펴봐야 한다는 얘기다.

주씨는 "차와 차가 부딪히는 사고보다 차내 안전사고가 더 많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노약자분들이 탑승하면 더 신경써서 운전해야 한다"며 "정차 전에 일어나는 승객들에게 '일어나지 말라'고 주의도 줘야 한다. 어제도 다리가 불편한 승객이 탔는데, 계속 일어나려고 해서 앉을 때까지 3번이나 안내했다"고 말했다. 하나같이 AI 기사가 하기 어려운 부분들이다.
 
주씨는 "(위급한 상황에 AI기사가) 조치를 취하는 게 너무 힘들 것 같다"면서 "위급한 환자가 있어도 AI기사가 운행하는 차는 계속 목적지를 향해서만 갈 거 아니냐"고 걱정을 토로했다. 이어 주씨는 "우리 직업을 빼앗긴다는 생각에 불안하다. '우리 직업이 없어지는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버스기사 권덕남(56)씨도 "사람의 생각, 사람의 대처능력과 기계의 대처능력은 다를 것"이라면서 "사람의 '감각'이라는 게 있지 않냐"고 말했다.
 
권씨는 "운전을 하다보면 살얼음판처럼 굉장히 미세하게 해야 할 때가 있다"면서 "사람이 손잡이를 잡지 못하고 서 있거나 어르신들이 타면, 우리가 그 상황을 보고 판단하면서 운행을 하는데, AI는 아마 못할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버스기사 A씨 또한 "AI 기사로 대체해서는 손님이 원하는 걸 우리 사람 기사들처럼 해줄 수가 없다"면서 "당연히 사람기사가 인지가 훨씬 빠르고, AI는 무임승차도 못 잡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A씨는 "AI기사가 도입되면, 승객들이 기사한테 화풀이도 못하지 않냐"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인간(승객)과 인간(기사)이 서로에게 의지하는, 그러나 이제는 AI와 인간의 교차로가 될 '160번 버스'. 과연 자율주행버스는 무사히 운행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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